풀이 마르는 소리 / 최동호 벽지 뒤에서 밤 두시의 풀이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건조한 가을 공기에 벽과 종이 사이의 좁은 공간을 밀착시키던 풀기 없는 풀이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허허로워 밀착되지 않는 벽과 벽지의 공간이 부푸는 밤 두시에 보이지 않는 생활처럼 어둠이 벽지 뒤에서 소리를 내면 드높다, 이 가을 벌레소리. 후미진 여름이 빗물진 벽지를 말리고 마당에서 풀잎 하나하나를 밟으면 싸늘한 물방울들이 겨울을 향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 「황사바람」, 열화당,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