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그리운 나라 / 장석주

낙동강 파수꾼 2021. 8. 21. 16:10

 

그리운 나라  /  장석주

 

 

 

1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젊은 날의 첫 아내가 사는 고향,

지금은 모르는 언덕들이 생기고

말없이 해떨어지면 묘비 비스듬히 기울어

계곡의 가재들도 물그늘로 흉한 몸 숨기는 곳,

이미 십년 전부터 임신 중인 나의 아내,

만삭이 되었어도 그 자태는 요염하게 아름다우리.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연기가 토해내는 굴뚝

속에서 꾸역꾸역 나타나는 굴뚝 아래

검은 공기 속에서 낙과처럼 추락하는

흰새들의 어두운 하늘 애꾸눈 개들이

희디흰 대낮의 거리에서 수은을 토한다.

 

- 수은을 먹고 흘리는 수은의 눈물,

눈물방울

절벽 같은 천둥번개 같은,

 

 

2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달의 엉덩이가 구릉에 걸리고

너도밤나무 숲속 위의 하늘에도 그리운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자주 발견된다.

아내의 지느러미는 여전히 매끄럽고 그동안

낳은 딸들은 낙엽 밑에 잠들어 있으리, 내 아내는

여전히 낮엔 박쥐들을 재우고

밤엔 붉고 검은 땅에 엎드려 알을 낳으리.

아내의 삶에 약간의 이끼가 낀 것이

변화의 전부이다, 내 앞가슴의

거추장스러운 의문의 단추들이 툭툭 떨어진다.

 

 

3

 

나는 밤에 도착한다, 지난

여름의 장마로 끊긴 다리의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눈치 빠른 새앙쥐들은 낯선 침입자를

힐끗거리고 무심한 아내는 자전거만 타고 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의 흰 종아리가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마다

스커트자락 밑으로 아름답게 드러나곤 한다, 아아

너무 늦게 돌아왔구나, 내 경솔함 때문에

빠르게 날이 어두워진다, 그동안 아내의

입덧은 얼마나 심하였던가, 유실수의

성한 열매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최후의 시장에서 인신매매업으로 치부를 할 때

아내는 날개 달린 다람쥐처럼 날아다녔으리라.

너도밤나무과의 북가시나무 숲속 위로 열린 하늘엔

죽은 사람의 장례가 나가고 바람을 방목하는

언덕의 숲속에서 누가 지느러미도 달리지 않은

사람의 아들을 낳는다, 그림처럼 누운 아내의 입술에

내 입술이 닿기도 전 아내는 힘없이 부서져내린다.

그리움은 그렇게 컸구나,

머릿속의 우글거리는 딱정벌레들을 한 마리씩 풀어 주어

내 머릿속은 빈 병실 같다, 피안교(彼岸橋)를 건너서

내일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다시 최후의 시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 「그리운 나라」,  평민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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