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풀이 마르는 소리 / 최동호

낙동강 파수꾼 2021. 10. 23. 21:32

 

풀이 마르는 소리  /  최동호

 

 

 

벽지 뒤에서 밤 두시의

풀이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건조한 가을 공기에

벽과 종이 사이의

좁은 공간을 밀착시키던

풀기 없는 풀이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허허로워

밀착되지 않는 벽과 벽지의

공간이 부푸는 밤 두시에

보이지 않는 생활처럼

어둠이 벽지 뒤에서 소리를 내면

드높다, 이 가을 벌레소리.

후미진 여름이

빗물진 벽지를 말리고

마당에서

풀잎 하나하나를 밟으면

싸늘한 물방울들이

겨울을 향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 「황사바람」,  열화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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