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시간 - 論文 · 詩作法 외 38

사물을 보는 시각 - 그 아홉 가지 유형 / 이형기

사물을 보는 시각 - 그 아홉 가지 유형 여기서 우리들 자신은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반성하며 한번 점검해 보자. 지금 우리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가정한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차이를 단계화해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이 나올 수 있다. ①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②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⑤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⑦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⑧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들을 본다. ⑨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3)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3) 121 시는 물수제비뜨는 거예요. 언어라는 수면(水面) 앞에 한껏 몸을 낮추는 거지요. 시는 절대적으로 듣는 방식이에요. 대상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내 얘기를 하지 말고, 대상의 얘기를 하세요. 의미는 숨기고, 말의 감촉을 느끼도록 하세요. 언어에서 언어로 건너뛰다 보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동질적인 재료로 동질적인 판을 짜세요. 만두피처럼 단단히 붙여야 해요. 122 시골에서 새끼 꼬는 것 보셨지요. 일단 두 발로 꽉 잡고 손으로 비틀지요. 잉크병 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비틀잖아요. 그처럼, 대상을 고정시킨 뒤에 의미를 비틀어야 해요. 머릿속 생각은 다 똥이니까 버리세요. 말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그 사이에..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2)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2) 111 점 하나가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점 두 개가 있으면 선이 되지요. 점 세 개가 있으면 면이 생겨요.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반드시 면(面)을 만들어야 해요. 여기다 점을 하나 더 보태면 깊이(높이)가 생기는데 그건 '말할 수 없는 것'에 닿는 거예요.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면은 만들어야 해요. 112 발목이나 손등에 지나가는 핏줄 보세요. 그 푸른 선들, 하늘빛을 닮은 정맥들 말이에요. 정맥에는 더러운 피가 흐르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푸른빛이 날까? 그런 느낌 참 좋지요. 또 여드름 짜다가 말라붙은 자국, 입가에 묻은 하얀 침 자국 같은 것들, 그 느낌도 참 좋지요. 그런 재료들 모아두고 있으면 어느 순간 자기 글에 들어오게 돼요. 그것이 ..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1)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1) 101 시의 첫 구절에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해요, 전에 나훈아 기자 회견 하는 것 보셨지요. 도입부에서 분위기를 딱 장악하잖아요. 그 안에 글쓰기의 기술이 다 들어 있어요. 밀고 당기다가, 뒤에 가서 확 뒤집고, 감동으로 끝내기. '기승전결, 할 때, '결(結)' 자에는 실 사(絲) 변이 들어 있지요.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반드시 홀쳐매야 해요. 102 시는 드리블이에요. 전적으로 말을 몰아가는 거지요. 관념의 방어막을 뚫고 '무의미'의 골대 안으로 말을 차 넣는 거지요. 독자들은 드리블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103 우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잘 몰라요. 상식과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하는데,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요. ..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0)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0) 91 시와 산문의 차이는 피아노와 실로폰의 차이예요. 피아노는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지만, 실로폰은 일일이 때려주어야 하잖아요. 강약을 조절하는 데도 차이가 있어요. 피아노는 페달을 밟아야 하지만 실로폰은 일일이 팔힘으로 조절해야 해요. 시 쓸 때 그 차이를 느껴보세요. 92 말을 적게 하면 있어 보여요. 말을 다 해버리면 없어 보이는 거예요. 돈 받으러 가서 주머니에 손 넣고 조몰락거리면 겁먹어요, 칼이 든 줄 알고...... 있어 보이려면 딴소리하지 말아야 해요. 그냥 "잘 지내시지요. 식사는 잘하시고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시인이에요.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거지요. 93 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 '어디 좀 가 있..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9)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9) 81 철새들은 호주에서 새만금까지 이박 삼일이면 도착한대요. 기류(氣流)를 타기 때문이지요. 흐름을 타는 것과 못 타는 것, 그게 시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82 나선(螺線) 탄도를 통과한 탄환은 힘이 실리지요. 또 아이들이 갖고 노는 비행기는 감긴 고무줄이 풀리는 힘으로 날아오르지요. 그처럼 꼬인 말이 풀리는 힘으로 시는 떠오를 수 있어요. 83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는 일차산업이고 철저히 수공업이에요. 시 쓰는 사람은 말을 꼬기만 할 뿐, 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말이 알아서 할 거예요. 84 차 안에 열쇠를 두고 문을 잠그면, 밖에서 문 따는 방법이 있지요. 긴 자(尺)를 넣어 창틈을 벌려주고, 구부린 철사를 집어넣어 딱 걸어서 빼내기. 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