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江 - 중앙시조백일장 입선작 420

분홍낮달맞이꽃 / 윤애라 - 2016년 5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분홍낮달맞이꽃 폐지로 묶인 활자 짐칸에서 나부낀다 십 킬로에 팔백 원 따뜻한 그의 양식 구르는 녹슨 바큇살 햇빛 환히 감긴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휘청대는 허공이 불구의 기억을 또 한 번 치고 간다 수없이 꼬꾸라져도 떠나가지 않는 웃음 짐칸을 밀고 있다 길 하나를 내고 있다 가난에 젖은 하루 아려오는 실핏줄 그녀의 분홍이 활짝 낮달맞이꽃 피고 있다

멀미 / 이순화 - 2016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멀미 요새는 걷는데도 멀미가 나네요 산벚나무 화살나무 은근한 눈짓에 덩달아 볼 붉은 진달래 환해지는 산비탈 속사포 랩 새 울음, 출렁이는 물빛 허공 뒤늦게 당도한 꽃 폭죽 터지자 빙그르, 우주가 돈다 바람꽃 이는 먼 산 마음이 하는 일에 까닭이 있던가요 꽃 멀미 핑계 삼아 무시로 뛰는 심장 이게 다 당신 때문입니다 늦은 밤, 문자 한통.

4인용 그늘 / 이예진 - 2016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4인용 그늘 동생은 흰 식탁보를 천사라고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래요 자매는 모든 주말을 교회에서 보냈다 엄마는 십자가 아래에 걸려있을까 방안에서 촛불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늘이 짙어질 때는 같은 소원을 빌었고 식탁은 네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 앉으면 의자가 두 개가 남겠지 천사가 날아가 버릴까 욕심을 숨겼다 예배 시간에는 다함께 졸음을 참았다 식탁보를 접으면 천사가 작아진다 촛농은 촛불의 눈물, 의자가 비어 있다

그녀, 히말라야 / 김우선 - 2016년 3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그녀, 히말라야 그리움의 한숨은 바람의 시편이다 고단한 내 모습을 행간에 깊이 숨겨 셀파가 지고 온 꿈으로 하얀 밤을 넘긴다 롯지로 이어진 길 눈감고 바라볼 때 점으로 떠오르는 밑줄 친 문장처럼 바람은, 룽다를 펄럭여 주문을 들려준다 바위에 새겨놓은 조난자 명단 위로 쏟아지는 슬픔을 햇살로 닦아내면 빙하에 쌓인 만년설 내 허기를 지운다

헝겊 / 서재철 - 2016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차하

헝겊 불거진 허리뼈 펴보지도 못한 채 해진 삶 삯바느질로 평생을 깁다가 남겨 논 헝겊 한 조각 꿈자리에 나부껴 애써 늘 잊으려 기억밖에 두곤 했는데 언제 와 문 여는지 옛 추억이 달려오고 가슴에 내도 없거늘 여울처럼 흐르니 와 닿는 이 감촉 손이 남긴 기척의 온기 당신의 가슴으로 추운밤을 견디던 오래 전 그때 품처럼 이리도 포근할까

허물의 안쪽 / 이태균 - 2016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허물의 안쪽 대합실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남자 고비사막 그 언덕 보름달 떠올린 듯 메마른, 이승의 등뼈로 어둠을 뜯고 있다 불어 터진 그림자 눈 뜨는 노숙의 밤 짓무른 기억 한쪽 반대로 돌려 눕혀 길 없는 길 속에 들어 한참동안 가물대고 실뱀 같은 골목이 몸속으로 기어들어 움켜쥔 통증 한 줌 침으로 삼켰는지 마침내, 고요해진 남자 없는 듯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