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시간 - 論文 · 詩作法 외 38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8)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8) 71 시는 쓰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말'에 있어요. 돌을 실에 묶어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돌이 도는 힘으로 팔이 움직이게 돼요. 그 느낌으로 글을 쓰세요. 늘 드는 비유지만, 외양간에서 소를 끌어낸 다음 앞세우고 밭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72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어떤 제목이 주어져도 쓸 수 있도록 하세요. 여러 번 그렇게 하고 나면 쉬워져요. 언어의 소리와 빛깔에 민감해지도록 하세요. 항상 낯선 데로, 어려운 데로, 모르는 데로 향하세요. 글을 쓴다는 건 말을 사랑하는 거예요. 작가는 말이 제 할 일을 하도록 돌보는 사람이에요. 글은 내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73 시는 전적으로 말의 일렁임,..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7)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7) 61 실은 같은데, 니트를 짜놓은 것과 퀼트 해놓은 건 다르지요. 쌀은 같은데, 떡 빚어놓은 거랑 밥 지어놓은 게 다르지요. 그처럼 언어는 같아도, 말하는 방식에 따라 시와 시 아닌 것이 생겨나요. 62 자전거 처음 배울 때, 페달 밟는 힘이 있어야 균형도 잡을 수 있지요. 핸들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지 말고, 일단 발을 굴러보라 하잖아요. 그처럼 어떻게 쓸지 머리만 싸매지 말고 말을 굴려, 말에 실려 가는 글쓰기를 해보세요. 63 사막의 은수자(隱修者) 얘기예요. 마귀의 유혹이 하도 심해 움막을 박차고 나서려니까 마귀가 따라 나오면서 "구두끈은 제가 매드리지요" 했 대요. 의식이란 놈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녀요. 사실은 우리가 의식을 붙들고 있으면서 왜 안..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6)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6) 51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 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恥部)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또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밝혀 잠깐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것과 같아요. 52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말 하는 것 들으면 재미있어요. 문학의 언어는 그렇게 더듬더듬하는 거예요. 작가는 모국어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이고 이방인이에요. 바닷물이 몇 단계로 깊어지듯이, 언어에도 여러 단계의 깊이가 있어요. 가장 바깥에 일상어, 사회적 ..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5)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5) 41. 시 쓸 때는 징검다리 건너듯이 해야 해요. 자기 원하는 대로만 갈 수 없잖아요. 또 산길은 산과 인간의 대화예요. 산이 굽는 곳에는 인간도 돌아가야 해요. 시는 우리 자신과 언어의 대화예요. 그러니까, 언어가 하려는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해요. 시는 말하는 게 아니라 듣는 거예요. 42. 시를 쓸 때 다음 세 가지를 유의하세요. 우선 말의 각(角)을 세우라는 거예요. 기와집 추녀 끝같이, 여자들 버선코같이, 꼭 그만큼만 들어 올려주면 돼요. 그리고 공깃돌 얘기 했지요. 다섯 개면 충분히 묘기를 부릴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욕심내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첫머리에 나온 단어들은 시가 끝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43. 낚시로 치면, 지렁이 미끼 끼..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4)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4) 31 파묻어둔 김장독을 꺼낼 때 유물(遺物) 발굴하듯이 하지요. 자기가 하려는 얘기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여기서 물 한 말을 보냈는데, 저쪽에서 한 주전자밖에 못 받았다면 보낸 사람 잘못이에요. 그냥 배가 아프다, 하지 말고 '우리하다'든지, '콕콕 찌른다'든지 듣는 사람이 좀더 느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의미 전달은 가능한 한 '원 샷'으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해요. 32 무슨 일이든지 균형 잡는 것이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자기 얘기를 너무 해도 지겹고, 안 해도 재미없어요. 그러니 삐딱하게 얘기해보세요. 중얼중얼하는 것 같은데, 확 빨려 들어가도록 말하세요. 쓰레기 태우는 데 가까이 있다가, 불길이 확 다가오면 놀라지요? 그렇게 하세요. 파..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3)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3) 21 씨앗 하나가 자랄 때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막막함은 시작도, 끝도 막막해요. 수평선과 지평선의 막막함...... 막막함은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긑긑내 닿을 수 없는 것이에요. 이 막막함이 글에는 생명을 주고, 글 쓰는 사람을 정화(淨化)시켜요. 항상 막막함을 앞에다 두세요. 그러면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쓸 수 있어요. 22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어요. 우리가 병들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도, 또 병에서 낫게 하는 것도 모두 내러티브지요. 그렇다면 이런 문장이 성립하겠지요. '비유할 수 없는 것은 치유할 수 없는 것.' 23 시 쓰는 사람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자기'라는 것도 관념일 뿐이에요. 습관과 무감각은 우리를 살게 해주지만 ..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2)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2) 11 땅 주인은 자기 땅에 사는 벌레들을 무시하지요. 자기는 잠시 왔다 가지만, 그것들은 계속 살아왔고 계속 살아갈 존재들인데도 말이에요. 우리는 스스로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라 생각해야 해요. 귀한 분들의 삶이 다 그렇잖아요. 예수나 마더 데레사처럼 말이에요. '하인(下人)'이란 '아랫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아래 서는 것'을 말해요. '거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려면 스스로 낮은 자리에 서야 해요.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12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 / 이성복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13-1) ※ 본 내용은 2006년과 2007년 사이 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 강좌 수업 내용을 詩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임. ☞ 出典 : 이성복, 「불화하는 말들」, 문학과지성사, 2015 0.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네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해요. 작자, 언어, 대상, 독자.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언어, 대상,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트럭과 뭐 다르겠어요. 어디 시 쓰는 일에서만 그러할까요. '안 좋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남(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1. 시 쓰는 공부는 가파른 길이에요. 자기 자신을 내거는..

시의 초심 닦기 (9-9) / 위선환

시의 초심 닦기 (9-9) ● 원초적인 것은 아름답다. 원초적인 것은 언제나 최초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 감각과 직관의 세계를 흔연한 모습으로 접할 수 있다. 시론을 강의하면서 늘 얘기하던 본연 순연한 사물들이 감각과 직관의 존재로 다가서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감각과 직관의 사물이 의미와 관념으로 굳어져 버리게 되면서 순수한 존재를 잃게 되었고, 신화적 언어, 주술적 언어의 그 초월적 힘들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말의 힘이 소진된 채, 기능성만 강조된 무뚝뚝하고 투박한 개념어들만 들끓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소음의 언어, 관념의 언어에 묶여 산다. - 이건청, 《시와 상상》 2007년 여름호 ● 문제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한 개인의 마음이 여유로워질 때(특히 자연을 시적 대상..

시의 초심 닦기 (9-8) / 위선환

시의 초심 닦기 (9-8) ● 시인들은 상당기간 내면화되지 않았습니까. 또 그런 것을 긍정하는 쪽에서도 자기들이 이런 내면화의 연대를 고착시키고 있고요. 내면화는 자기문학이라고 하는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거든요. 한계에 자족하고 있죠. 도치되어 있고. '이런 문학에 제한되어서는 우리 문학은 점점 좁아지고 자기를 끊임없이 모방하는 것 밖에는 안 되겠다. 타자 읽기 없이는 심화되어야 할 자기내면도 구제 받을 수 없다. 타자가 없이 어떻게 자아가 성립되는가?' 하는 이 상대성이야 말로 자기 존재의 최고 형태인데 이것이 없이 자기 방안에 자기를 가둬둔다면 끝내 자기도 없어지는 거죠. 최선의 이기주의를 위해서도 최선의 이타주의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문학에서 수용해야 합니다. 내면을 확대하면 외부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