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대숲 바람소리 / 송수권

낙동강 파수꾼 2021. 8. 12. 17:26

 

대숲 바람소리  /  송수권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 「아도(啞陶)」, 창작과비평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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