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무화과 / 김지하

낙동강 파수꾼 2020. 10. 29. 16:47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애린」, 실천문학사, 1986 ;  「김지하 시전집」, 솔,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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