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뒷짐 / 이정록

낙동강 파수꾼 2022. 6. 18. 19:04

 

뒷짐  /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자신의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

등뒤에 양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낮은 언덕의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를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등허리의 빈 손 위에, 짐짓

우주 한 채가 가볍게 올라앉았다.

 

 

 

♣ 시 들여다보기

 

   인류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대한 숭배는 계속되고 있다. 나라와 인종에 따라 섬기는 신의 이름과 생김새는 다르다. 그러나 인류는 공통적으로 어떤 절대적 존재에 자신들만 특별히 속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에스파냐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 남아 있는 벽화를 보면 사슴, 들소, 매머드 등의 동물들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벽화의 목적에 대한 많은 추측 중에는 주술적인 용도도 포함된다. 약 일만 년 전, 인간들은 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그들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바랐다. 선사시대의 인간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 절대자에 대한 숭배를 택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들의 행위도 신에 대한 의지, 즉 종교다.

   이토록 오랫동안 내려온 종교의 위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름다은 미녀, 헬레네로 인하여 일어난 트로이의 전쟁을 빼면 인류의 모든 전쟁은 종교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종교분쟁은 대단하다.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 위해선 종교보다 좋은 이념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믿는 신을 다른 방식으로 섬기고 기도하면서 사후에 평안한 영혼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인간은 불안정한 현대사회에서 '마음의 위로'를 종교에서 찾는 것이다.

   또 인간이 종교를 갖는 것은 안전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죽음 뒤 자신이 믿고 있는 절대자 앞에 서게 됐을 때 타인보다 나은 특혜를 얻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종교든 사후세계를 인정하고 있다. 또 그만큼 사후세계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뒷짐」에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는 노인의 삶이 보인다. 이름 모를 노인의 삶은 일상적이기 때문에 쓸쓸하다. 더 이상 변주가 없을 삶은 아무리 느릿하게 걸어도 생의 마침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노인의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됐다. 그는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자식들 학비, 생활비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자신을 잊은 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모두 지난 후 자식들이 떠나고 늙은 몸만 남은 지금, 노인은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임을" 안다.

   늙은 몸 만큼이나 마음 또한 외롭다. 뒷짐 진 양손은 등허리의 버팀목이 된다. 그렇게 노인의 손은 등을 위로하고 등은 손을 위로한다. 한 개체이지만 같은 시간을 달려 온 신체의 한 부위가 다른 부위를 감싸고 안는다. 이렇게 쓰다듬다 보면 그의 낡은 몸은 더 이상 아프거나 슬프지 않은 듯 따뜻해진다.

   시인의 눈에는 뒷짐을 지고 걷는 노인의 모습이 아기를 업고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혼자 걷고 있지만 노인의 등허리에는 무수히 많은 짐과 시간이 오르고 내렸다. 시인은 본다. 노인의 둥근 등에 허공 한 채가 업혀져 있는 것을. 그리고 그 허공은 거대한 우주 한 채가 되고 있음을. 열어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만물상처럼 꽉 차 있는 노인의 등허리에서.

   생의 종착역에 가까이 가고 있는 노인에게 종교가 있는지 시인은 잘 모른다. 그러나 종교보다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인다. 노인의 고된 삶, 그리고 노인이 걸어왔던 삶이 버려지지 않고 고스란히 양분이 되어 등허리에 얹혀 있는 것.  그가 정직하게 자신의 삶의 중량을 짊어지고 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