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내 발자국 보이지 않았다 / 안현심

낙동강 파수꾼 2022. 1. 4. 12:24

 

내 발자국 보이지 않았다  /  안현심

 

 

고개를 두 개 넘어

가쁜 숨 끝에 닫는 큰곰뱅이 선산

어머니 아버지 잠든 집을 찾아

늦매미 울음소리 손잡고 간다

마사토 하얗게 눈부시던

어린 날 비탈길은 시간 속에 묻히고

사람 발길 끊어진 산은

풀숲으로 뒤덮였다

 

그 깊은 산중에 밭을 일구어

젊은 부모님은 콩을 가꾸었다

부모님 따라 밭을 매고, 콩 타작을 하여

머리에 이고 지고 집에 올 때면

목은 부러질 듯 무게에 눌리고

다리는 떼어지지 않았다

닳아빠진 고무신 밑에서

온몸으로 일어서던 모래의 함성

 

가난한 사람들이 떠나버린 산길엔

달개비 꽃이 피고, 산나리꽃이 피고

어디에도 내 발자국 보이지 않았다

고라니 새끼가 어미와 산책하는,

그 길엔 풀꽃 향기만 가득할 뿐이다.

 

 

 

♣ 詩 들여다보기

 

   우리의 생을 여행으로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생이라는 장대한 여행 속에서 우리는 길을 따라 떠나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행은 떠남이 그 모티브가 되지만 그것은 곧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반드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여행일 것이다. 돌아옴이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여행을 통해서 나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최초 만남은 부모님을 통한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이다. 그런즉 고향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곳, 종국에 우리는 외지에서 쌓은 각자의 성과에 필적하는 이름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 머무는 자는 다만 고향에 묻힐 뿐이고, 고향을 떠나는 자만이 죽어서도 고향에 살아남을 것이다. 떠남으로써 남는 것이 고향의 역설적 의미인 터이다.

   시인은 성장하여 외지에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와 본다. 그것은 잃었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려보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고향으로부터 외부로 공간을 넓혀갔던 시인이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는 선산에 잠들어 계시고 반겨주지 않는다. 고향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켜 주신 부모님은 이 세상을 떠나고 가난으로 이어왔던 어린 날의 가족사만 덩그러니 기억 속에서 매미소리와 함께 뒹굴고 있다.

   어린 날 올랐던 비탈길을 가 보아도 사람 발길이 끊긴 지 오래고 산은 우거진 풀숲에 묻혀 있다. 우리가 돌아와 보는 고향은 예전과 같은 것이 아니다. 달개비꽃이 피어 있고, 산나리꽃이 피어 우리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고라니 새끼가 어미와 산책하는 산길엔 풀꽃향기만 가득할 뿐이다. 우리는 유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자연의 복원력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철저히 차단시켜 놓고 있다.

   고향에 돌아와 보면 그곳에 머물던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찾아 외지로 떠나고 외로움 속에서 풀꽃들만이 잔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생의 여정을 따라서 과거를 돌아보는 심회를 노래한 시인들이 많다. 옛 시조에도 고향에 돌아오니 인걸은 간데 없다 하였고, 정지용 시인은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라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다 하였다. 자연은 옛 자연이로되 사람은 옛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원도 남대천에서 부화된 새끼연어들은 본능적으로 물을 따라 떠나기 시작한다. 동해로 나아가 일본 열도를 따라서 알래스카까지 갔다가 다시 남대천의 모천(母川)으로 되돌아온다. 그 과정은 생사를 가르는 험난한 시련들로 가득한 여행이다. 새끼연어들은 다른 물고기나 새들의 밥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병이 들어 죽기도 한다.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먼 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5~6년의 과정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연어들이 쓰는 장대한 생의 대서사시인 셈이다.

   한국의 강원도 작은 계곡을 출발한 수많은 연어들은 죽고, 생을 지켜낸 일부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들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남대천에 도착하는 순간 가파른 협곡을 차고 올라가 알을 낳고 죽음으로써 여행을 마감한다. 이러한 연어의 비극적인 일생은 어미가 물려준 본능에 의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 연어의 일생에는 우리 인간들도 범접할 수 없는 장중하고도 지극한 생의 울림이 있다.

   안현심 시인이 돌아온 큰 곰뱅이, 시인이 떠났던 곳으로 돌아와 서는 순간, 지난 시간의 소모 속에 남은 생의 저녁 노을만 눈이 부시다. 이렇게 길 위에는 떠났다 돌아온 자의 긴 그림자만 깔리는데, 고향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나 서서히 먼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여, 그래도 과감히 더 멀리 떠나라. 생의 여행은 우리가 돌아온 만큼의 궤적으로 남을지니, 그대여 더 깊이 떠나라. 그게 우리 생이고 여행으로서 한 편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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