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차표 한 장 / 강은교

낙동강 파수꾼 2021. 11. 19. 12:45

 

차표 한 장  /  강은교

 

 

 

   바람이 그냥 지나가는 오후, 버스를 기다리고

있네, 여자애들 셋이 호호호 - 입을 가리며 웃고

지나가고, 헌 잠바를 입은 늙은아저씨, 혼잡한 길

을 정리하느라, 바삐 왔다갔다하는 오후, 차표 한

장 달랑 들고 서 있는 봄날 오후, 아직 버스는 오

지 않네

   아직 기다리는 이도 오지 않고, 양털 구름도 오

지 않고, 긴 전율 오지 않고, 긴 눈물 오지 않고,

공기들의 탄식 소리만 가득 찬 길 위, 오지 않는 것

투성이

   바람이 귀를 닫으며 그냥 지나가는 오후, 일찍 온

눈물 하나만 왔다갔다하는 오후

   존재도 오지 않고, 존재의 추억도 오지 않네

   차표 한 장 들여다보네, 종착역이 진한 글씨로

누워 있는 차표 한 장.

   아, 모든 차표에는 종착역이 누워 있네.

 

 

 

♣ 詩 들여다보기

 

   어느 책에서 보쉬에라는 신학자가 한 말을 읽었다.  "인간이란, 자기가 지나가는 장소에 멈춰 서서 그곳의 아름다움을 음미해 보고자 하지만 '걸어라 걸어라'하고 외치는 어떤 준엄한 힘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나그네이다."

   가끔은 스톱워치를 누르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내가 되어 살고싶을 때가 있다. 아프리카 사막의 기린이 되고 싶기도 하고, 어린왕자처럼 작은 행성의 화산을 청소하고 싶을 때도 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무엇이 되어도 좋을 것 같을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단숨에 사람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배가 뒤집히듯 진부했던 삶을 전복시켜 줄 행운의 크로버를 찾는다. 말 그대로 전복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가진 모든 걸 내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여행은 떠남과 다르다. 무작정 헤매고 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발을 뗐던 출발선,

바로 그곳으로 돌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차표에는 종착역이 누워 있었다. 강릉. 부산. 선유도. 생각 없이 끊었던 차표들에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내렸던 종착역들이 누워 있다는 시인의 발견은 대단하다. 종착역에게 그 종착역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말 그대로'종착'이기 때문에

허리띠를 풀고, 양말을 벗고 '누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종착역은 커다란 화석이 되어 많은 이를 스쳐 보낸다. 한 세월이 또 지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행은 사람을 들뜨게 하지만 결국 제자리를 찾기 위한 떠남이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알몸의 자신에게 다가가는 고행길이다. 혼자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과 말동무를 하고 자신과 생각을 공유한다. 철저히 자신과만 동행한다. 자신을 여과 없이 바라보는 것처럼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또 있을까. 생전 처음 보는 터미널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막막했던 순간이 있는 이라면 알 것이다. 발을 딛자마자 이방인이 되는 곳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나를 반기는 이가 없다는 것. 어디를 가더라도 나를 박대할 곳 또한 없다는 것.

   이 시에서 화자는 정류장에 서 있지만 정작 떠나지 못한다. 차표는 한 장인데 화자가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긴 전율 오지 않고, 긴 눈물 오지 않고, 공기들의 탄식 소리만 가득한 찬 길"에서 화자는 본인이 떠날 만큼 슬픈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너무 슬프기 때문인지, 정말 슬프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감춤이 답답하지 않다. 이 상황은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다. 공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떠남과 망설임의 사이에서 우리는 지독하게 외로운 그의 마음을 알겠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일상의 밖으로 우리를 내어 보냄으로써 일부분이 아닌 자신의 전부를 보게 만든다.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전부를 바라보고 놀라고 충격을 받으며 다시 부분의 삶으로 돌아와선 다른 각으로 자신을 살게 된다. 더 관대해질 수도 있고, 더 철저해질 수도 있겠다.

   한 장의 차표만 가진다면 금을 넘어설 수 있다. 이 시의 후반에 버스가 왔는지 서술되지 않았다. 화자가 떠났는지 떠나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 화자가 떠났길 바란다. 그의 시선이 낯선 지붕과 물가에 머물렀길 바란다. 낡은 종착역에서 잠시 가방을 풀고 앉아 지나가는 모든 것을 잔잔하게 바라봤길 바란다.

   그것들이 그의 동공에 오랫동안 살아 가끔씩 진부한 일상에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