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에 가다 / 길상호
지나온 길 돌아보면 아득한데 아직도 닿을 길
보이지 않네 어두운 생각만 밀려들어 잘 빠지지
않고 나는 물끄러미 뒤따라온 발자국 헤아리고
있었네 사랑에 잠겨 출렁이던 기억도 모래벌판
에 물결무늬로 남아 나는 더 목이 말랐네 여기
저기서 껍데기들의 노래만 사각거렸네
커다란 산맥으로 일어나 다가오던 파도 거품
으로 사그라지고 그래도 세상 깊이 껴안아 본
사람은 주저앉지 않는다고 귓바퀴 속삭이는 바
람, 삶의 푸른 깊이가 두렵기만 한 나는 파도의
끝자락에 서성일 뿐이네 내가 끌고 온 발자국들
물 속에 몇 방울 기포만 남기고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 떠날 수 없었네
다시 거쳐야 할 길이 만리나 될지 또는 어디
서 끊기고 말지 이제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수평선에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오는 생각들, 땅
이 제 한켠을 허물어 백사장으로 길게 드러눕듯
이 나는 무너지는 마음까지 다독거리며 만리포
돌아설 수 없었네
♣ 詩 들여다보기
내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려 할 때, 그것은 거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거리는 때로 이해의 다른 말이 된다. 우리는 이해하려는 대상과 내가 한 없이 가까울 때 그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함정이다. 어쩌면 교만이다. '나'라는 실체는 내가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불안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선택, 나, 나, 나, 나, 나...... 수많은 '나'들은 쉼 없이 나를 괴롭힌다. 도대체 '믿음'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를 믿기 위해, 한 번 믿어보기 위해 끊임 없이 나를 반성하고 때론 나를 자학한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던 '나'들이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리고 떠난다. 내가 살던 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걷던 길로부터 떠나 새로운 집, 낯선 사람들, 처음 걸어보는 길을 찾아 나선다. 내게 상처 주는, 나를 괴롭히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숨통을 죄여오는 것들로부터 떠나 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여행이라 부른다.
여행의 일차적 목적은 '거리두기'이다. 온갖 것으로부터 우리는 떠나고 싶어 한다. 세상에 매달렸던 마음이 조금은 지치길 기다리면서, 위안· 휴식· 편안함 따위를 고대하면서 '나'를 잊을 준비를 한다. 화자가 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선택한 공간은 '만리포'다. 왜 하필 만리포인지, 어째서 떠나야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리포가 '거리두기'에 실패한 공간이란 사실이다. "물끄러미 뒤따라온 발자국"이 그렇다. 그것을 가만두지 못하고 자꾸만 "헤아리고" 있는 화자의 행동이 또한 그렇다. 화자는 새로운 곳으로 걸어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지난 흔적에 미련을 두고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사랑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까. 사랑 때문에 이곳 만리포까지 떠밀려 왔던 것일까. 만리포에 와서 "더 목이" 마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화자를 목마르게 했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물을 찾아 바다로, 만리포로 온 것은 아닐까.
만리포가 실패한 공간이란 사실은 "껍데기들의 노래만 사각거렸네" 부분에서 더욱 확장되어 나타난다. 껍데기는 알맹이와 견주어 볼 때 핵심을 벗어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지 껍데기가 아니다. 화자가 사랑에 실패하여 괴로워했다면, 그리하여 모태와 같은 바다를 찾은 것이라면, 그가 기대했던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포근히 그의 마음을 감싸줄 수 있는 바다였을 것이다.
화자의 허망감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은 파도다. 파도는 "커다란 산맥으로 일어나" 바다를, 온 세상을 제 몸으로 품어 안을 것 같았지만 이내 "거품으로 사라지"고 만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뜨거운 가슴으로 품어 보았지만 상처투성이가 되어 만리포까지 밀려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바람은 나약해진 화자를 다독여주고 있다. "그래도 세상 깊이 껴안아 본 사람은 주저앉지 않는다"고 화자를 위로한다. 행복했던 사람이 절망을 느낄 수 있고, 절망했던 사람이 다시 행복을 꿈 꿀 수 있는 것처럼 일어설 수 있으리란 희망을 새겨 주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바람의 말에도 쉽게 용기를 얻을 수 없다. 삶의 깊이가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시간들이 "물 속에 몇 방울 기포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안쓰러워 지난 사랑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왜 만리일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이렇게도 힘들었는데 다시 또 "만리나" 되는 길을 걸어 나가야 되는 것일까. 또 그 길을 걸으며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까. 나약해지진 않을까. 그러나 "다시 일어나야 한다". 언제까지나 "무너지는 마음"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는 없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만리다.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어디선가 "끊기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가야 한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위해 우리는 가야 한다.
이제야 알겠다. 화자의 '거리두기'는 실패하지 않았다. 만리포에서 화자는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거리를 두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나와 더욱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사랑에 실패했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만리포에서 나를 이해하면서 실패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느꼈다. 말하자면 여행은 실패를 사랑하는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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