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江 - 중앙시조백일장 입선작

재개발지의 밤 / 배원빈 - 2014년 6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낙동강 파수꾼 2021. 10. 16. 06:50

 

재개발지의 밤

 

 

 

아파트도 멀리서 보면 원고지로 보였을까

원고지라 발음하니 왜 고치가 떠올랐을까

빈 곳에 몸을 숨기는 사람들의 오랜 습성

 

닿지 못한 말들처럼 듬성듬성 불빛들은

날개가 돋기 직전 상형문자 같아 보인다

고치 속 채우지 못한 이웃들을 생각한다

 

나비의 유충처럼 웅크린 계절의 한 때

창문마다 침묵들이 그늘을 키워내고

불 꺼진 말줄임표로 사연들이 숨어 있다

 

누군가를 향해가는 불빛이라도 좋으련만

원고지와 아파트는 인기척을 기다린다

햇살이 날아간 자리 폐허가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