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어디선가 허공을 무너뜨리면서
마치 산악과 같은 조수가 밀려와서는
두 시의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급히급히 침몰당했다.
마음 한쪽 구석에서 살짝 꺾여진 여름날의
두 시의 빛의 매장,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고요함이 고요함으로 무너지고
빈 소리가 빈 소리로 요란하던 것을.
그러나 세상은 세상,
반쯤은 병(病),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병(病)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내 귀를 지하(地下)로 내리게 하는
그러나 폭풍(暴風)은 폭풍,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칼이 칼로써 무너지고
반쯤은 죽음,
죽음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 「잠자는 돌」, 고려원, 1979 ; 「박정만 전집」, 외길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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