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오후 두 시 / 박정만

낙동강 파수꾼 2020. 10. 10. 16:39

 

오후 두 시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어디선가 허공을 무너뜨리면서

마치 산악과 같은 조수가 밀려와서는

두 시의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급히급히 침몰당했다.

마음 한쪽 구석에서 살짝 꺾여진 여름날의

두 시의 빛의 매장,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고요함이 고요함으로 무너지고

빈 소리가 빈 소리로 요란하던 것을.

그러나 세상은 세상, 

반쯤은 병(病),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병(病)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내 귀를 지하(地下)로 내리게 하는

그러나 폭풍(暴風)은 폭풍,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칼이 칼로써 무너지고

반쯤은 죽음,

죽음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 「잠자는 돌」, 고려원, 1979 ; 「박정만 전집」, 외길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