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어
아버지가 되어
아가야,
너에게 이름을 준다
이 세상 앞에 너를 세운다
오늘따라 짙푸른
저 산맥 위로 너를 들어 올린다
남으로,
북으로 뻗어가는 싱싱한 산줄기
앞 다투어 달려가는 곳에 길이 있다
네 울음소리 터져나와
처음 이 세상 풀잎 흔들 때
부끄러운 삶을 묶어
나도 다시 태어난다
아가야,
저 큰 산 네가 넘어야 한다
♣ 詩 들여다보기 :
위의 詩에서 시인은 인생의 가장 큰 또 하나의 시작이며 행복한 순간인 자식의 탄생과 삶에 대해 노래한다. 탄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동반하며, 우리 인간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일이다. 아버지가 되어 사랑하는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준 시인은 이 세상 앞에 너를 세운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 세상은 결코 만만한 세상이 아님을 시인은 상기한다.
시인의 눈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이 세상을 "짙푸른 / 저 산맥"과 "큰 산"에 비유한다. 이 세상은 격랑의 파도와도 같은 무한경쟁 속에서 때론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때론 삶의 무의미성과 고통으로 몸서리쳐야 한다. 이 세상은 바로 인간이 넘어야 할 산맥이며 높은 산인 것이다. 이렇듯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시인은 "남으로, / 북으로, 뻗어가는 싱싱한 산줄기 / 앞 다투어 달려가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탄생이 지니고 있는 시작에 대한 희망이며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놓는 일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은 산도 없고 산맥도 없는 평탄한 길을 걸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첩첩이 굽이치는 험난한 산줄기를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놓여진 여정이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야 할, 혹은 가고 있는 여정의 길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산줄기를 시인은 싱싱한 산줄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기의 새로운 탄생 앞에 놓여진 무한한 가능성과 새롭게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암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탄생과 함께 이 세상에 세워진 아기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해 뻗어가야 한다. 싱싱한 산줄기를 앞 다투어 달려가다 보면 그곳엔 반드시 길이 있으며, 그 길은 무한경쟁으로 꿈틀대는 산줄기를 넘어 전진할 것이다.
탄생을 알리며 이 세상의 풀잎을 흔드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시인은 "부끄러운 삶을 묶어 / 나도 다시 태어난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과 앞으로 닥칠 자식의 삶을 병치시키며 새로운 탄생을 경이롭게 지켜보는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성찰의 길을 모색한다.
삶이란 때론 당장이라도 벗어 던지고 싶은 짐일 때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탄생과 시작을 이어가며 치열하게 존재한다.
죽음의 그날까지 시인은 말할 것이다.
"아가야, / 저 큰 산 네가 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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