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고향 / 신동엽

낙동강 파수꾼 2020. 10. 17. 22:44

 

고향

 

 

 

하늘에

흰 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 詩 들여다보기 :

 

   인류는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탄생한 것인가. 우리를 직접 낳은 어머니의 몸과 인류의 모성으로서의 대지, 그 근원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중요한 문학적 테마이다. 이를 통해서 문학은 현실 삶의 당면한 문제를 넘어서 인류의 근원에 대한 관심과 사유를 토대로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시 「고향」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하고 소박한 표현 속에서도 인류의 탄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상기시킨다. 이 점에서 신동엽의 문학적 관심은 현실과 아우르는 원형적 사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위 시는 첫째 연에서 '하늘'을 매개로 하여 '이 세상'을 인식한다. 화자는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 고향'을 생각하고 있다. 이 시의 '하늘'과 '구름'은 화자에게 존재론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위 시에서 '하늘'은 '세상'에 비유되고, '구름'은 '이 세상에 나온 것들' 즉, 인간과 비유되었다. 화자는 흘러가는 '흰구름'의 유동성을 파악한 후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고향'을 생각한다.

   둘째 연에서는 인간 삶의 비본질성이 드러난다. '즐겁고저 / 입술을 나누고 / 아름다웁고저 / 화장칠해 보이'지만, 그것은 생명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기에 절대적으로 즐거울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 돌아가야 할 고향은 / 딴 데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 연에서는 인간들이 '고향'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기에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럽다고 하였다.

   위 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고향, 즉 신동엽 시인이 말한 바의 원수성(原數性)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인간과 대지가 일체를 이루었던 시원적(始原的) 세계는 현대문명으로 인해 갈가리 찢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원수성의 세계로 환원하지 않고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과 자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차수성(次數性)으로 전락한 세상에서의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찬 현실을 거부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문학은 현실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그것도 현실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을 넘어서는 데에서 문학적 의미는 발휘된다. 인간은 현실 위에서 살지만 우리의 삶의 목적은  현실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문제를 향하여 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연관시켜 볼 때, 현실의 문제를 넘어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해석을 통해서 현재의 인류를 돌아보게 한 것, 바로 그것이 신동엽 시인의 문학적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