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똥이 내 물고기다
목욕탕에서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김 오르는 엄마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알몸의 엄마가 안고 있는 알몸의 아가들
이뻐라,
밤벌레 같다
속살 찰진 생밤을 깨물다가
딱 만나게 되는 밤벌레들
육덕 좋은 엄마들의 흰 종아리 같고
실핏줄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갓난아가의 동그란
알몸
같은,
생밤 한알 속
후끈하게 고여 있는 살냄새
신랏적 혜공 스님은
똥누는 원효를 보고 그랬다 한다
니 똥이 내가 잡은 물고기라카이.
알몸의 아가를 바라보다가
알몸의 내가 빙긋 웃는 것도
아가의 똥 때문,
젖빛 고운 생밤 한알 찰진 살내음 속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똥누는 밤벌레들
날랜 물고기 몇 마리 지느러미 파닥거리는
생밤 한알 공들여 맛나게 먹는다
귀하게 똥을 잡순 후에 내가 낳을 물고기!
더운 살 속으로 헤엄쳐 온다
♣ 詩 들여다보기 :
아직 어려서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하고 엄마의 젖만 먹어왔던 아기가 싸놓은 똥에서는 비릿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젖 냄새가 난다. 그렇기에 '아기 똥'은 일반적인 의미의 '똥'이라고 볼 수 없다. 그냥 말랑말랑하고 샛노랗게 빛나는 금덩어리라고 생각해도 되리라.
화자는 목욕탕에서 알몸의 엄마와 아기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꼭 밤벌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밤벌레는 벌레이지만 생김새가 혐오스럽지 않고, 하얗고 통통한 알몸의 아기와 같이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다. 생밤 속에 꼬물꼬물 들어있는 밤벌레는 꼭 엄마 뱃속에 들어 있던 태초의 아기와 같다. 또한 크고 잘 익은 밤 속에만 벌레가 자란다.
엄마의 통통한 살집 같은 밤 속에서 벌레는 꼭 자신의 몸뚱이만한 터널을 뚫고 그 속에 들어앉아 똥을 눈다. 밤은 제 몸을 최대한 살찌워 놓고 벌레를 부른다. 벌레는 그 밤을 먹고 똥을 남긴다. 결국 벌레의 똥만 가득찬 밤은 땅 속으로 되돌아간다.
화자는 목욕하는 엄마와 아기를 보면서, 생밤 속의 밤벌레를 생각했고, 더 나아가 똥을 누는 원효와 물고기의 일화를 떠올려본다. 그때, 목욕하던 아기가 똥을 눈다. 화자는 그 모습을 보며 생밤 속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똥을 누는 밤벌레를 연상한다.
아직 덜 자라 걷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돌 전의 아기들이 똥을 눌 때는 어떠한가. 똥이 마려우면 누운 채로 두 다리를 얼굴 가까이 말아올리고 온몸으로 힘을 준다. 마치 톡 건드리면 화들짝 제 몸을 말아버리는 공벌레처럼.
화자는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목욕탕에서 본 아기를 생각하며 생밤 한 알을 공들여 먹는다. 그 생밤 속에는 밤벌레가 싸놓은 똥이 들어 있을 것이고, 원효 일화의 맥락에서 볼 때 그 똥을 먹은 화자는 곧 통통한 아기와 같은 물고기를 낳을 것이다. 화자는 똥 누는 아가와 밤벌레를 연결해서 물고기를 탄생시켰다. 얼핏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생물들을 통해 '순환하는 탄생'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목욕하는 알몸의 엄마와 잘 익은 생밤의 연결은 상상의 좋은 단초로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똥이 곧 물고기가 되듯이 생명의 몸에서 빠져나온 것들이 우주를 한 바퀴 돈 후에 다시 생명으로 탄생한다는 상상력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하기에 밤벌레가 똥을 눈 생밤 한 알을 먹고 나서 '귀하게 똥을 잡순 후에 내가 낳을 물고기'라고 하는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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