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그대의 들 / 강은교

낙동강 파수꾼 2020. 9. 26. 18:30

 

그대의 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얼마나 작으냐, 라고.

 

* 「벽 속의 편지」, 창작과비평사, 1992

 

'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불과 바람 / 강은교  (0) 2020.09.26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0) 2020.09.26
그릇 / 오세영  (0) 2020.09.22
겨울 노래 / 오세영  (0) 2020.09.22
열매 / 오세영  (0) 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