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1미터의 사랑 / 오탁번

낙동강 파수꾼 2020. 9. 7. 09:37

 

1미터의 사랑

-1m의 정확한 길이는 얼마일까? 물론 1cm가 1백개, 1mm가 1천개 이어진 길이이

 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하게 1m의 표준을 정해놓아도 10조분의 1m의 오차가 발

 생한다고 한다.

 

 

 

석 자 가웃 되는 1미터의 정확한 길이는

빛이 진공 속에서 2억9천9백79만2천4백

58분의 1초 동안 진행된 거리라고 하는데,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그리움의 거리는

베틀 위의 팽팽한 눈썹줄이 잉아에 닿을 때

북에서 풀리는 비단실의 떨림이라도 되는지,

우리들 사랑의 이 영겁(永劫)과도 같이 멀기만 한

닿을 수 없는 허기진 목숨의 허공 속에는

칠월 초이렛날 미리내를 날으는 까막까치의

하마하마 기다리던 날갯짓 소리 가득하지만,

내 약지(藥指)를 그대의 약지(藥指)에 마주 비벼서

10조분의 1미터의 목마름 죄다 지우고

운석 떨어지고 화광(化光) 박히는 우주 속에서

미리내를 건너는 그리움이 금빛으로 물들 때,

아스라한 길녘 어느 1미터의 물이랑 위에

지필묵(紙筆墨)과 궁시(弓矢)와 실타래 가지런히 놓아서

애비에미 이별은 나비잠 속에서도 꿈꾸지 않을

외씨같은 젖니 난 우리 아기의 첫돌을 잡히고.

 

* 「1미터의 사랑」, 시와시학사, 1999 ; 「오탁번 시전집」, 태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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