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야오 씨와의 대화 / 성찬경

낙동강 파수꾼 2020. 4. 12. 12:08

 

야오 씨와의 대화

 

 

이렇게 하늘이 맑고 해가 빛날 때

방 안에 앉아 있는 건 죄지요,

하고 내가 말했다.

죄고 말고요. 이런 때 밖에서 바람을 쐰다는 건

바로 덕을 쌓는 거지요,

하고 야호 씨가 말했다.

하늘은 꼭 가을 하늘처럼 파랗습니다.

해는 꼭 여름처럼 타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허지만 날씨는 매섭습니다.

몇 도쯤이나 될는지?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

아마 섭씨 영하 15도는 될 겁니다.

보세요. 저 눈의 평원은 마치 영원의 도포자락 같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설경은 볼 수가 없지요.

겨울은 계절의 제왕입니다,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

이런 날씨는 바로 그 겨울의 정화입니다.

해는 쓰다듬고 바람은 매질합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바로 그런 거지요,

천국과 지옥의 공존입니다,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

우리는 마치 어린애 같습니다.

이런 소리 듣는 것 좋아하십니까?

하고 내가 말했다.

좋구말구요.

어린아이 같다는 말 제일 좋습니다,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

야오 씨는 오십객이다.

야오 씨도 나도 멀리 조국과 처자를 떠나 있는 처지이다.

우리는 그후 말없이 해와 하늘과 바람과 눈 속을 서성였다.

 

- 미국 아이오와에서 쓴 시. ` 야오 이웨이`는 대만의 극작가로 작고했음.

 

* <시간음>, 문학예술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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