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하여지향(何如之鄕) 오(五) / 송욱

낙동강 파수꾼 2020. 3. 28. 19:38

 

하여지향(何如之鄕) 오(五)

 

 

없는 것에서 태났으니까

살아 있듯 몸짓하며,

명동이 정녕 밝은 동네면,

생각해도

아무리

모를 일이

생각보다 나은 양하여

목청이 있는 대로

잠자코 있다.

어떤 이는 아무개나

누구처럼 너와 나처럼,

가슴을 치다

배를 두드리다가,

잠자리에 든 회오리바람처럼

익숙한 얼굴인데

낯선 두려움이다.

귀신이야 곡하든 말든

인간이 인생을 감상 못할 바에야,

마작이나 암살하듯

사랑을 하고,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드라.

당이 아니라

사람이드라.

골목처럼 그림자 진

거리에 피는

고독이 매독처럼

꼬여 박힌 8자면,

청계천변 작부를

한아름 안아보듯

치정 같은 정치가

상식이 병인 양하여

포주나 아내나

빚과 살붙이와,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

다다른 낭떠러지!

오가는 데를 모르는

바람 같은 신경병인데

`짐이요 짐이요`

여기는 시장, 시민이 사는 곳이다.

고맙고도 몇 번이고 죄송하면서

돈과 권력과 피땀으로 메꾸어도,

발밑이 아득하게

영혼을 판 시대여!

한번 사라지면

없는 목숨이라고,

원죄를 잊고저

멋지게 살고저                                                                   

어긋난 수지(收支)가

휴지처럼 골방에서 버석거릴 때

눈물이 구슬 같은 사치품이라,

새앙쥐를 새앙쥐를

에워싸고 농치는 고양이처럼

우뚝 서 있는 그대가 누구인가?

망신과 망명을 잃은 망령들

원수가 아니면 이웃사촌들이여!

인생 생활고를

고약처럼 붙인 아름다움이

살별 같은 꽃으로

만발하며 휩싸 도는

그대 앞에선,

시시한 시시비비(是是非非)

한숨으로 어물어물

초인(超人)이나 하인(下人)이나

절실하게 요절할 뿐.

빼앗기다 찾았다가 하는 땅에서

봄이 겨울 같아,

`GMC`처럼

구공탄 같은 인심(人心)을 억누르는데,

타향 같은 고향이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 아니냐고,

가리키는 손길 그 너머로,

우리는 물 위에 뜬

달이

관(棺)이 아니다.

누가 알겠으나

무엇인지 모를 역사를

이력처럼 스스로 곡하는

달빛 아래 소쩍새는

나날이 솟아 오는 해얼굴 위에

콧물을 흘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삼단도(三段跳)하여

`나`라는 나라라도

저주처럼 합장처럼

밝는 듯 어두운 그대 사이여!

뱀 같은 비둘기 같은

미친 미소가

빛처럼 누리를 가리며는,

살아 있듯

죽음으로 태나고저

무덤 속에서 노래 부른다.

`되살아나면 그렇게는 그렇게는

아아 그렇게-.`

 

* <하여지향(何如之鄕)>, 일조각,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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