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송(白磁頌)
가진 것 다 내주고
정말 사심 없으면
늙어서도 저렇게 빛이 나는가
언제나 텅 빈 가슴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이승의 시름까지 하늘에 닿고
희다못해 푸르른 영혼을 본다
본래 두메에서 태어나
늘 당하고도 말없이 살아온
관심 밖 한줌 신분이기로
그래서 누구나 밟고 가는 흙이었기로
너의 눈부신 출세를 믿을 수가 없구나
어느 날 문득 임자를 잘 만나
하얀 속살로 환생한 너는
아직도 만삭의 몸을 풀지 못하고
온갖 그리움만 잉태한
차고 흰 만월로 떠 있었구나
살아생전 가진 것 다 내주고
퍼낼 것 다 퍼내고
가장 속깊은 사랑을 연옥에 던져
영원한 색깔로 다시 태어난
이조(李朝)의 한 여인, 그 슬픈 내생을
쟁쟁(錚錚) 울리는 속살을 본다.
* 「그림자를 지우며」, 시와시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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