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백자송(白磁頌) / 임영조

낙동강 파수꾼 2021. 4. 20. 17:02

 

백자송(白磁頌)

 

 

 

가진 것 다 내주고

정말 사심 없으면

늙어서도 저렇게 빛이 나는가

 

언제나 텅 빈 가슴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이승의 시름까지 하늘에 닿고

희다못해 푸르른 영혼을 본다

 

본래 두메에서 태어나

늘 당하고도 말없이 살아온

관심 밖 한줌 신분이기로

그래서 누구나 밟고 가는 흙이었기로

너의 눈부신 출세를 믿을 수가 없구나

 

어느 날 문득 임자를 잘 만나

하얀 속살로 환생한 너는

아직도 만삭의 몸을 풀지 못하고

온갖 그리움만 잉태한

차고 흰 만월로 떠 있었구나

 

살아생전 가진 것 다 내주고

퍼낼 것 다 퍼내고

가장 속깊은 사랑을 연옥에 던져

영원한 색깔로 다시 태어난

이조(李朝)의 한 여인, 그 슬픈 내생을

쟁쟁(錚錚) 울리는 속살을 본다.

 

* 「그림자를 지우며」, 시와시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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