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시간 - 論文 · 詩作法 외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3-2) / 정일근

낙동강 파수꾼 2020. 8. 23. 12:49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3-2)

 

 

 

4.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지난 91년 도서출판 빛남에서 묶은 내 두 번째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 수록된 시편들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숨막히는 더위 고물 선풍기가 뿜어주는 더운 바람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적의로 괴로워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미성숙의 벽에는 우울한 시대의 푸른 곰팡이가 피고 숨어서 김지하의 시들을 몰래 읽으며 늘 혁명 전야처럼 살고 싶었다.'

   적의, 우울한 시대, 김지하, 혁명 전야... 그런 말들과 함께 나의 성년식이 시작됐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담임선생님이 권유하셨던 K은행 입행 대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가장인 어머니의 가계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셨는지 대학진학을 허락하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시와 역사의 현주소였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만이 시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문예부장까지 지냈던 상고 시절,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 통학길이 지루해 가끔 박인환의 시들을 외웠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시집은 김소월 시집과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윤동주 시집, 단 두 권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던 시집들을 읽고 쇠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시도 있으며, 시는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는 비로소 작은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였다. 그 개구리에게 시의 세상은 참으로 넓고 험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받은 문학교육이 편협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런 현실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판금된 김지하 시집 필사본을 숨어서 읽으며 내가 살고 있던 시대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교과서의 문학교육만 편협돤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왜곡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10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 라고 신나게 불렀던 유신의 실체는 남북통일을 막는 최대 장애였으며, 유신시대는 그 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진해에 있던 대통령 별장 덕에 어린 시절 대통령 행차길에 나가 고사리 같은 환영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던, 중절모를 쓴 박정희는 일본 육사 출신의 독재자였다. 절망은 분노를 낳는다. 분노 앞에서 나는 시와 역사에 복무할 것을 선서했다.

그때 대학 1학년이던 나는 야학 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대부분 현장 노동자였던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 강의실보다 야학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야학의 동료교사들 중에는 해군에 복무하는 학·석사 장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형도 야학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군복무를 했는데 야학에 동참했다.

 

   마산 양덕에 있던 그의 아파트 서재는 내 문학수업의 바다였다. 사면을 빼곡이 채운 그의 이론서들이 나를 가르쳤으며 그와 밤을 새워 마시던 술이 나를 성숙시켰다. 그 시절 나는 자주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혁명의 꿈으로 이어졌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내가 택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은 시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뒤틀린 현실과 바르게 흘러가지 않는 역사에 대한 분노가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로써 현실에, 역사에 대해 혁명하고 싶었다. 야학 7년을 보내고 나는 '야학일기'란 연작시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분노의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분노도 없는 법. 조국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대, 분노가 일면 터트려라. 분노도 시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5. 부끄러움이 시인을 만든다.

 

   습작시절 누구에게나 병이 생긴다. 이름하여 '신춘문예병'.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손에 아름다운 상처 '펜혹'이 생기듯, 이 병도 아름다운 병이다. 신춘문예. 굳이 말뜻을 풀이하자면 '새봄의 문학예술'이다. 그러나 신춘문예는 풀이하는 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뜻을 갖는 말이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습작시절이라는 통과의레가 있고, 신춘문예는 그 통과의례 중 가장 치열한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 치열함의 끝에 당도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영광에 다름 아니다.

   신춘문예 병은 신문사마다 1면에 신춘문예 현상공모 사고를 내는 11월 초쯤 발병한다. 신춘문예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뛴다. 혈관 속에서 문학의 피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문제는 그런 흥분된 상태가 응모 마감일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계절은 언제나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서서히 찾아오는 때쯤이다. 심장과 피는 더워지지만 몸은 추워지고 등은 불안감으로 굽어진다. 말수도 줄어들고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끔씩 왜 그렇게 긴 한숨이 터져 나오던지. 그 시절을 겪은 나의 대학성적표는 감추고 싶은 흉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신춘문예 병이 내게 준 후유증이었다. 

 

   고백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면한 점수다. 졸업학점이 160학점이었던 시절, 신춘문예 병 때문에 펑크난 학점을 맞춘다고 4학년 2학기에도 21학점을 신청해야만 했었다. 신춘문예의 마감과 학년말 시험기간은 늘 일치했다.  나는 그 두 길 앞에서 늘 미련도 없이 신춘문예의 길을 택했다.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학년말 시험준비로 밤을 세울 때 나는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준비한다고 밤을 세웠다. 유신시대, 군사독재 시대에서 학점을 얻기보다 신춘문예 당선시인이란 이름을 얻고 싶었다. 언젠가 가지게 될 내 첫 시집의 약력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빛나는 한 줄을 남기고 싶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누구에게나 나오는 2급 정교사 자격증보다 먼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아직 그 시험 답안지들이 남아있을까?  시험 문제와는 무관한 글들만 써놓거나 백지로 제출했던 답안지들.  월영동 449번지, 나의 사랑 나의 대학.  사범대학으로 오르던 돌계단, 지칠 때마다 바라보던 푸른 합포만. 내 기억 속 풍경들의 계절은 언제나 그 겨울이다. 사범대학 빈 강의실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시를 쓰던 동면 직전의 곰 같았던 내 모습.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우편함을 찾아가면 복도 쪽으로 눕던 긴 그림자. 환청처럼 갈가마귀 울음소리 들리던 시절. 더워졌던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도 신춘문예 병 후유증이다. 마감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면 할 수 있는 일이란 낮에는 당선통지를 기다리는 일과 밤이면 술을 마시는 일 뿐이었다. 우체국에서 작품을 보내고 돌아와서부터 당선연락이 올 때까지의 그 막연한 기다림. 폭음과 함께 했던 확신과 장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마침내 허탈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당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는 동병상련하는 도반들의 충고에도 혹시, 혹시 하며 기다리다 절망하다 받아보는 1월 1일자 신문- 그 신문에 실린 그 해 당선자들의 얼굴사진과 빛나는 작품들, 당선 시들을 읽은 뒤에는 지금까지의 기다림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렇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성숙시켰다. 현재의 내 시가 어떤 자리쯤에 서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던 부끄러움이 내 시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시작되고  뛰어난 그해 당선 시들을 읽으며 언젠가는 찾아올 내 문학의 봄인 신춘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문학을 꿈꾼다면 그 꿈은 욕심에 불과한 것이니, 다시는 신춘을 기다리지 마라. 

 

 

6. 바람도 시인을 만든다

 

   왜 그렇게 바람이 좋았는지 몰라.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다.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간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소년의 이마를 짚는다. 바람의 손은 언제나 서늘하다. 소년은 멈추어 선다. 그 때 소년은 보았다, 바람의 몸을. 무형인 줄로만 알았던 바람이 보리밭 위로 달아나며 드러내는 몸의 흔적을.

 

   "저게 바람의 몸이구나"라는 깨달음. 그것은 세상의 비밀 하나에 눈 뜬 기쁨이었다. 그러한 세상의 비밀을 찾는 것이 시고, 그 일은 내가 해야하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시 오 리쯤 되는 길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함께 돌아가는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바람의 몸을 나 혼자 지켜보며 소년은 바람이 되고 싶었다. 온 몸으로 부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이 나에게 절망적이던 시간이 있었다. 열네 살 중학생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어 백일장에 참석한다. 백일장의 시제가 '바람'이다. 열일곱 살은 자신에 차 있다. 일찍 바람의 몸을 보았기에. 이윽고 심사가 끝나고  입상자 명단이 방으로 붙는다. 열일곱 살은 실망한다.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장원자가 호명되어 단상으로 나간다. 뜻밖에도 기라성 같은 상급생들을 모두 제치고 동급생 여학생이 장원이다. 단발머리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바람을 노래한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첫줄에 나는 몸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았다. 동급생 계집아이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충격은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부끄러움은 또 절망을 낳았다.

 

   내가 바람의 몸을 보았을 때 바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같은 나이인 여학생의 정신세계와 언어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백일장이 끝나고 열일곱 살은 호수 곁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동급생 계집아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열일곱 살은 자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표정이다. 열네 살과 열일곱 살에 만난 바람은 분명 다른 바람이었다. 나는 어제 불던 바람이 오늘 다시 분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바람은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 태어나는 바람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의 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부는 바람이 내일도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그것이 내일의 시다.

 

   처음 만난 시의 화두가 바람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일찍부터 풍병이 들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바람 같은, 바람병이 들었다. 나는 내 사주팔자를 보지 않았지만 내 사주와 팔자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 평생을 떠돌게 하는 역마살이 끼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바람들이 나를 시인으로 키웠다. 머무는 것은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부는 것이다. 분다는 것은 움직임, 시는 그런 움직임이다.

   시인은 바람이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고여있는 것들은 시인을 만들지 못한다. 바람이 불기에 살아야 한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나는 바람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오는 동안 많은 사랑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부는 바람의 길을 따라 바람처럼 불어갈 것이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인의 운명이다. 언제나 나는 바람이고 싶다. 그대에게로만 부는 뜨거운 바람이고 싶은 것이다. 그대 나의 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