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달이 빈방으로 / 최하림

낙동강 파수꾼 2020. 8. 22. 12:29

 

달이 빈방으로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입니다 대쪽 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겨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 「굴참나무에서 아이들이 온다」, 문학과지성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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