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손
- 서시
두 손을 펴든 채 가을 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 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니다
죄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가을 손 조용히 여미면 떠날 날도 보입니다.
* 「별」, 동학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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