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시간 - 論文 · 詩作法 외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6) / 이성복

낙동강 파수꾼 2021. 6. 6. 13:47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6)

 

 

 

51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 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恥部)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또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밝혀 잠깐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것과 같아요.

 

 

 

52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말 하는 것 들으면 재미있어요.

문학의 언어는 그렇게 더듬더듬하는 거예요.

 

작가는 모국어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이고 이방인이에요.

 

바닷물이 몇 단계로 깊어지듯이,

언어에도 여러 단계의 깊이가 있어요.

가장 바깥에 일상어, 사회적 언어가 있다면

가장 안쪽에 옹알이 같은 무의식의 언어가 있지요.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같은 주문(呪文)은

의미가 묻어 있지 않은 기호계적 문자예요.

오직 음악으로서만 존재하는 언어지요.

 

시의 언어는 옹알이와 일상어 사이에 있어요.  

 

 

 

53

 

 

꿈과 일상의 중간 지점이 몽상이에요.

자면서 꾸는 꿈에는 저항할 수 없지만

몽상은 자기 꿈을 몰아갈 수 있는 거예요.

 

잘 말하는 건 '반쯤 말하는 것'이라 하지요.

통제와 무질서 사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

완전히 덮이거나 완전히 벗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실성한 듯이 중얼거려 보세요.

 

춤출 때나 스케이트 탈 때,

앞발 내어놓고 뒷발 살짝 갖다 대듯이,

앞말 벌려놓고 뒷말 살짝 붙여보세요.

 

 

 

54

 

 

북두칠성은 별들이 흩어져 있는 것인데

거기서 우리 마음은 '국자'를 보게 하지요.

 

우리의 지식은 편집된 것이고,

잘려나간 것들은 망각돼요.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잊혀진 것들을 다시 불러오는 거예요.

 

새로운 걸 본다는 건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고,

접혀 있던 것들을 펼치는 것 외에 다른 발견은 없어요.

 

 

 

55

 

 

동그라미를 그릴 때,

○ ○ ○ ○ 이렇게 연결하면 산문이 되겠지요.

그러나 시는 달라요.  ( ( ○ ) )  ( ( ○ ) )  ( ( ○ ) )  ( ( ○ ) )

달무리 옆에 또 다른 달무리가 생기는 식이지요.

 

땅바닥에 돌을 늘어놓는 것이 산문이라면,

물에 던진 돌의 파문(波紋)을 연결하는 방식이 시예요.

말의 번짐과 퍼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에요.

 

 

 

56

 

 

내가 말을 부리는 게 아니라

말이 나를 부릴 때,

말의 무게와 불투명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건 참 좋은 소식이에요.

 

주먹이 아니라, 장도리의 무게로 못을 치라 하지요.

말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해요.

연못에 돌을 던지면, 여러 겹의 동심원이 생겨나듯

말의 파문이 퍼져 나가도록 해야 돼요.

 

시의 언어는 중층결정(重層決定)이에요.

시의 애매성이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57

 

 

수천 킬로 이동하는 물고기는

제 허리를 비틀어서 가는 거예요.

말이 제 허리를 비틀어서 가도록 하세요.

 

말이 장난치게끔 해야

생생한 리듬을 얻게 돼요.

 

언제나 '보이게끔' 얘기해야 해요.

우리의 뇌는 '구체적 이미지'라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잠들어버려요.

 

 

 

58

 

 

아이들은 평평한 길을 갈 때에도

빈틈을 골라 폴짝폴짝 뛰면서 가지요.

시가 말하는 것도 그런 방식이에요.

 

시도 말장난이지만,

깊이에 닿아 있는 말장난이에요.

그러나 깊이를 바로 드러내려 해서는 안돼요.

깊이는 땅을 파면 생기는 구멍 같은 거예요.

 

 

 

59

 

 

시적 글쓰기는 비틀기, 틈새 만들기, 어긋나기예요.

 

가령, '나는 밥을 먹고......'라는 말 뒤에

'밥그릇 속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말을 끼워 넣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나지요.

 

문장을 살짝 비틀기만 해도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요.

그건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섬광(閃光)이에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섬광과도 같은 문장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60

 

 

시 쓸 때 헛소리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요.

단, 시간 장소 사건을 같이 가져가야 해요.

 

탑 쌓듯이 기단부(基壇部)는 딱 잡아두고,

말이 번져 나가는 것을 적극 수용하세요.

 

글 안에 우연과 돌발변수를 집어넣으세요.

말에 실려 가는 모험을 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