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비 / 장만영
낙동강 파수꾼
2020. 3. 3. 18:08
비
순이 뒷산에 두견이 노래하는 사월달이면
비는 새파란 잔디를 밟으며 온다.
비는 눈이 수정처럼 맑다.
비는 하아얀 진주 목걸이를 자랑한다.
비는 수양버들 그늘에서
한종일 은색 레에스를 짜고 있다.
비는 대낮에도 나를 키쓰한다.
비는 입술이 함쑥 딸기물에 젖었다.
비는 고요한 노래를 불러
벗향기 풍기는 황혼을 데려온다.
비는 어디서 자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순이 우리가 촛불을 밝히고 마주 앉을 때
비는 밤 깊도록 창밖에서 종알거리다가
이윽고 아침이면 어디론지 가버린다.
* <양>, 자가본,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