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風景 - 자작詩

李箱 선생께 / 김상우

낙동강 파수꾼 2020. 3. 3. 11:35

 

李箱 선생께

 

 

세상엔 온갖 기업이 즐비하오

시를 쓰는 일도 기업이라 불러볼까 하오

왜 말은 없으시고

하얀 치아에 콧수염으로 웃으시오

시를 쓰는 일이 기교를 낳고 기교는

절망을 낳는다고 웃으시오

나도 어쩔 수 없이

선생이 간 길을 따라가 보려 하오

절망의 낱말들을 생산하는 중이오

손에 잡히지 않는 낱말의 부품으로

시를 조립해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소

당신은 기교를 낳고 절망했지만

나는 기교도 없고 참다운 절망도 없소

당신의 깡마르고 단단한 웃음이 너무 든든하오

시대를 역순으로 살아온 당신을 우러러 보며

오감도를 읽소

까마귀가 공중에서 관찰하고 있소

그 아름다운 노래를 나는 일찍 몰랐소

후천개벽하지 못한 젊은 지성들이 거리를 활보하오

당신은

'비극은 도야지가 아니란 데서 출발했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살찐 도야지가 시를 쓰는 세상이오

나는 깡마른 당신의 웃음이 너무 부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