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 박노해
신혼일기 / 박노해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기인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 들면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 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 위에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날이 밝으면 또다시 이별인데,
괴로운 노동 속으로 기계 되어 돌아가는
우리의 아침이 두려웁다
서로의 사랑으로 희망을 품고 돌아서서
일치 속에서 함께 앞을 보는
가난한 우리의 사랑, 우리의 신혼행진곡
♣ 詩 들여다보기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다운 빛깔로 채워진다. 살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벅찬 감정은 인생에 희열을 안겨주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따뜻하다. 이 세상의 사소한 것까지 모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래서 늘 함께 있고 싶어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남녀 두 사람이 한 쪽씩 다리를 묶고 뛰는 것인데, 이해와 포용이 없으면 힘들다. 이인삼각 경기는 혼자 뛸 수 없다. 다리를 하나씩 묶는 순간 서로의 호흡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잘 뛸 수도 없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 발도 맞게 되고 익숙해진다.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다. 정말 결혼한 부부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으며 발자국을 같이 찍어 나가는 것이다.
소나무는 살아서 오백년 죽어서 오백년이라는 천년에 걸친 수명을 가졌다. 또한 솔잎은 두 잎이 하나로 묶인 채 떨어진다. 우리 전통 혼례에서 소나무 가지를 올려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년을 사랑하고, 죽음까지도 함께 하라는 것이다.
1912년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건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였으며 그 사건의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작됐다. 유명한 자선가이자 뉴욕의 맨하탄 한복판의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이사도레 스트라우스 부인은 타이타닉호가 침몰될 때 그 여객선과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중의 하나다. 구명보트에 탈 수 있었지만 남편과 마지막 순간을 같이 했다. 67세의 남편과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을 본 목격자는 "물은 사랑을 채울 수도 없는 반면, 사랑을 죽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 장면을 묘사했던 영화 속 부인의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는 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늙었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으로, 나도 갈 것입니다"라고.
시인의 「신혼일기」에서 그려주는 모습도 이와 같다. 어떠한 어려움도, 고된 일상도 함께라서 견딜 수 있다. 신혼이라면 매일매일 봐도 또 보고 싶을 텐데,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을 하고 돌아온 집엔 아내가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신혼의 달달한 꿈에 빠져 지낼 시간에 힘겨운 노동과 가난이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 들"며 눈물 짓는다. "혼자서 밤들을 지낸" 아내의 외로움이 잠옷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또한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를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다. "주체 못할 피로에" 깊게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피곤함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아내가 옆에 있다.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옆에 있다. 이들은 부부이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고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안다. "파랗게 언" 차가운 몸으로 "사랑의 입맞춤"을 해준다. 그러면서 가난한 부부는 마침내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을 먹으며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를 한다. 또 일주일의 긴 이별이 찾아와 고달프겠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단 하루일지라도 평생을 사랑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혼이라서 더 간절한지 모른다. 신혼이라서 아직 부족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어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현실일지 모른다. 다 갖추고 시작하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신혼은 뭐든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 처음엔 어렵다. 가난할지라도 소나무의 솔잎처럼 바람도 함께 극복하는 진정한 부부가 되어야 한다.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이사도레 스트라우스 부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