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눈 그친 날 달마의 차 한 잔 / 최동호
낙동강 파수꾼
2021. 10. 23. 21:54
눈 그친 날 달마의 차 한 잔 / 최동호
-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은산철벽 마주한 달마에게
바위덩이 내려누르는 졸음이 왔다
눈썹을 하나씩 뜯어내도
졸음의 계곡에 발걸음 푹푹 빠지고
마비된 살을 송곳으로 찔러도 졸음이 몰아쳐왔다
달마는 마당으로 나가
팔을 잘랐다 떨어지는 선혈이 튀어*
하얗게 솟구치는 뿌연 벽만 바라보았다
졸음에서 깬 달마가 마당가를 거닐었더니
한 귀퉁이에 팔 잘린 차나무가
촉기 서린 이파리 햇빛에 내보이며
병신 달마에게 어떠냐고 눈웃음 보내주었다
눈썹도 팔도 없는 달마도 히죽 웃었다
눈 그친 다음날
바위덩이 졸음을 쪼개고 솟아난 샘물처럼
연푸른 달마의 눈동자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게나)
* 혜가는 어깨 높이로 눈 내린 날 밤 스승에게 법을 물었다. 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을 자르고 난
다음 혜가는 달마의 법을 얻었다.
⊙ 「공놀이하는 달마」, 민음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