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파수꾼 2021. 10. 16. 18:51

 

밥그릇  /  고영민

 

 

 

밥하던 아내가

포개진 밥그릇이 빠지지 않아

나에게 들고 왔다

 

그릇이 그릇을 품고 있다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아픔

당최, 힘주어 당겨도 꼼짝하지 않는다

 

물기에 젖어 안으로 깊어진 마음

오늘은 저리 꼭 맞았나 보다

 

한 번쯤 나는 등 뒤에서

너를 안아보고 싶었네

 

선반 위,

씻긴 두 개의 밥그릇이

봉분처럼 나란하다

 

 

 

♣ 詩 들여다보기

 

   결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결혼에 대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는 여러 가지 의견들과,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 자체의 무의미성과 관련된 견해들도 있다. 그리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까지도 분분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사정의 악화로 젊은 세대들의 결혼관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적인 여건이 마련되지 못할 경우에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고 또 사랑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되어야 하는 결혼의 풍속도도 크게 달라져 간다.

   더욱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의 경우에는 농촌으로 시집을 오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일반적인 경향에 의해서 연변,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결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서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소위 다문화 가정의 문제들이 발생함으로써 국제적인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가정이 파탄나고 국가 간의 신뢰가 깨지고 각자의 생이 왜곡되기도 하는데 이것도 모두 결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관의 부재에서 오는 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의 필요성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결혼을 통해서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한 개인은 결혼을 통해서 비로소 보다 더 확고한 사회적 존재로 공인받게 된다. 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가족 단위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기회를 갖게도 된다. 그런 점에서 가족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작고도 중요한 사회적 단위이다.

   요즈음에는 동성애와 동성결혼 등도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경향들이 늘어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인정되고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전통사회 결혼의 대세를 완전히 그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 풍속도의 변화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결혼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의식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시인은 위 시에서 밥그릇을 통해서 부부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였다. 포개진 그릇은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릇이 그릇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릇들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물기로 인해서 잘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릇 사이의 물기란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아픔"이며 "물기에 젖어 안으로 깊어진 마음"이다. 부부가 결혼하여 살면서 둘 사이의 아픔이나 함께 하는 아픔을 통해서 그릇이 밀착되듯 부부 사이에도 더 깊은 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선반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밥그릇은 바로 부부이다. 선반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개의 밥그릇은 서로를 통해서 나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들 안에는 여러 겹의 똑같은 그릇들이 서로를 품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다. 그릇은 하나일 때 그만큼의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며, 모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릇은 그릇을 품을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살아가면서 결혼의 의미를 종종 잊곤한다. 시간이 가면서 서로의 관계가 상투화되고 자동화되면서 그 가치가 퇴색하기도 한다. 종국에는 "잡은 고기 먹잇감 주는 것 보았느냐"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 결혼이다.한편에서는 악처의 역할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시적으로 보면 서로를 살리는 다양한 사랑의 한 방식이 된다.

   위 시에서 보듯이 밥그릇이 서로 다른 밥그릇을 품고 있는 관계로 결혼을 이해한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오히려 그릇과 그 뚜껑의 관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 뚜껑은 남성이 될 수도 여성이 될 수도 있다. 그릇에 뚜껑이 덮여서 그 안의 내용물이 온전하게 담겨 있는 상태,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 안의 내용물을 따뜻하게 전해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