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연하계곡 / 장석주

낙동강 파수꾼 2021. 8. 21. 16:49

 

연하계곡  /  장석주

 

 

 

충주 제천 지나자

들의 평등이 급격히 흐트러지며

척추 세우고 일어선 산세가 사나워진다.

죽기 위해 먼 곳 가는 사람과

살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철새들이

하늘과 땅에서 엇갈린다.

영월 늦은 저녁 밥때

여윈 불빛 몇 점

저문 길을 전송하는데,

저녁빛 속으로 내륙의 길들은 침전한다.

낭떠러지를 매달고 오르는 오르막차로 끝 지점

열린 허공에 입동 하늘은 퍼렇다.

먼 것은 멀리 있다는 까닭으로

푸른 멍들을 몇 개씩 갖고 있다.

 

청령포와 장릉을 일별 한 뒤

연하계곡 방향으로 빠지는데,

첩실 소생의 그늘 짙은 살림 형편보다

찬 물길 키우는 계곡의 처지가 낫다 못하리라.

에움길 두엇 새끼처럼 끼고 도는 연하계곡

휘돌고 감돌아 나가는 저 물길에 가 닿는

마음속을 저미며 들어오는

그릇과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캄캄하다.

 

연하계곡에 와서 계곡 바람소리를 듣는

내 귀도 푸른 멍이 든다.

 

 

*  「붉디붉은 호랑이」,  애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