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살구나무 발전소 / 안도현

낙동강 파수꾼 2021. 7. 30. 07:58

 

살구나무 발전소  /  안도현

 

 

 

살구꽃......

살구꽃......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 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낮에도 살구꽃......

밤에도 살구꽃......

 

 

 

♣ 詩 들여다보기

 

   삶의 소박한 풍경 속에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섬세한 발견으로 기쁨, 깨달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인은 모든 자연물들의 세계를 엿보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시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또 다른 시적 대상으로 삼아 구체적이며 실감나는 접근을 한다. 모든 시들이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서 출발하여 전체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또한 깊이 동화된 시인 자신의 내면 정서를 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주변적인 것에 대한 재해석과 발견으로  살아 있는 자연을 인간의 감정으로 동일화시켜 준다. 자연의 삶이 인간의 삶과 분리되어 해석되지 않고 늘 겹쳐지면서 전체적인 삶의 의미를 포괄하게 만든다. 시인은 인간의 삶보다 더 가깝게 자연을 느끼고 실감나게 재구성한다.

   천천히 우러나는 깊은 맛을 가지고 있는 시인의 세계는 늘 따뜻하고 열정이 가득하다. 이렇게 소담스러운 언어 미학과 삶의 소박한 풍경들을 선보여 온 시인은 여러 빛깔의 자아를 소화한다.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삶의 작은 발견과 고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보여 준다. 그의 시적 취향은 생명의 원리에 대한 통찰과 자연에 대한 미적 인식, 농촌의 삶과 토속적 세계에 대한 애정, 꽃과 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묘사하는 새로운 시각,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자의식 및 자아 성찰과 같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살구꽃은 벚꽃과 흡사하다.  한 아름 피어 있는 꽃은 시인이 비춰준 내용과 같이, 마치 밤이고 낮이고 켜 있는 "알전구"와 같은 느낌이 든다. "살구나무 어디인가에" 발전소가 있을 것이라 예측이 된다. 살구나무에 또 다른 존재를 함축시켜 살구꽃 가득 핀 걸 보면서 알전구가 수천, 수만 개 달려 있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마을에 전기가 처음" 생기던 날 알전구에서 들리던 "윙윙" 소리처럼, 꽃 주변을 맴도는 벌떼들도 '윙윙' 소리를 낸다. 살구나무 어딘가의 발전소에서 보내는 사랑의 신호가 아닐까. 살구꽃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동력장치가 있음을 찾아 내는 시인은 살구나무에게 이상적인 세계를 심어 준다.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달아 놓고 있다. 알전구는 사랑이다. 알전구의 빛이 강하듯, 꽃이 만개하듯,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든", "낮이든", 보고 싶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윙윙"거리는 거다. 그 힘의 근원은 생명력 넘치는 사랑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발전소를 돌리는 것처럼 힘차고 환하다.

   이처럼 살구나무에 발전소가 있고, 살구꽃이 알전구로 보이는 다각적 시선은 자연을 그냥 자연으로서가 아닌 친화적 자연으로 상승시켜 사랑의 불빛으로 표출해주고 있다. 언제나 작은 것에 대한 각별한 통찰력을 지닌 시인은 자연을 통한 삶의 깨달음으로 특유의 감성을 통하여 질박하게 그려낸다.

   우리 주위엔 '아무 것도 아닌 사물들'이 많다. 하지만 그 '아무 것도 아닌 사물들' 속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 상상력의 눈이다.

   푸릇푸릇한 자연을 보라. 자연이 살아 숨쉬는 것, 그 자체가 에너지 형성의 기초이며 생태 속의 희망이다. 시인이 만들어낸 알전구 같은 시어들은 바로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마스터키라 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