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땡감에게 / 임영조

낙동강 파수꾼 2021. 4. 20. 16:45

 

땡감에게

 

 

 

그래, 견딜만 하냐.

구름 섞어 바람부는 때

아스라이 먼 가지 끝에서

네가 내민 주먹은 가당치 않다.

 

지난 5월 어느 날

문득 화관(花冠) 쓴 제왕이 되어

정상에서 부시게 웃던 너를

그저 우러러보기만 했다.

 

이젠 볼품없는 민머리

스치는 바람에도 자주 숨는 너

떫떨한 말씀으로 가득 차

이따금 소쩍새로 울더니

또 누구를 겨냥하는 팔매질이냐.

 

그래, 두고 보리라.

서릿발 빛나는 상강(霜降) 쯤

아차, 땅으로 떨어지는 찰나

비로소 새빨갛게 상기된

마지막 너를 보리라.

 

* 「바람이 남긴 은어」, 고려원,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