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시간 - 論文 · 詩作法 외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 (13-1) / 이성복

낙동강 파수꾼 2021. 4. 8. 18:08

 

이성복 詩論 : 불화하는 말들(13-1)

 

 

※ 본 내용은 2006년과 2007년 사이 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 강좌 수업 내용을 詩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임.

 

☞ 出典 : 이성복, 「불화하는 말들」, 문학과지성사, 2015 

 

 

 

 

0.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네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해요.

작자, 언어, 대상, 독자.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언어, 대상,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트럭과 뭐 다르겠어요.

 

어디 시 쓰는 일에서만 그러할까요.

'안 좋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남(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1.

 

 

시 쓰는 공부는 가파른 길이에요.

자기 자신을 내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삶은 사라지고 시만 남겠지요.

 

예술과 삶은 거의 같이 나가는 것 같아요.

예술 가지고 장난치거나 멋 부리면 안 돼요.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해요.

 

공자의 스승 주공(周公)은 머리를 감다가도

손님이 오면 그대로 나가 맞이했다 하지요.

'구이경지(久而敬之')라는 말처럼,

시는 끝까지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2.

 

 

기도에는 묵상기도(meditation)와

관상기도(contemplation)가 있는데,

 

묵상기도는 나 자신이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는 것이고

관상기도는  예수님이 나를 통해 자신의 생애를 기억하

는 거예요.

 

묵상기도의 '주체(主體)'가

관상기도에서는 '역주체(逆主體)'로 바뀌는 것이지요.

 

자신을 온전히 신에게 내맡기는 관상기도는

시 쓰기의 마지막 꿈이라 할 수 있지요.

 

 

 

3.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노파 역의 배우는

돌절구에 이빨을 부딪치는 연기를 하는데,

실제로 두세 개를 부러뜨렸다 해요.

 

저처럼 겁 많은 사람은

예술 안 하면 안 했지, 그런 거 못 해요.

 

이런 게 예술가와 딴따라의 차이일 거예요.

예술, 자신의 전 생애를 거는 것!

 

 

 

4.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인간은 이런 본질적인 물음을 늘 피해 다녀요.

 

시는 계속해서 그 물음을 되살리는 거예요.

시 쓰기가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시 쓰기는 세상과 자신에게 민감해지는 일이에요.

시인은 인생과 발가벗고 동침하는 사람이에요.

 

 

 

5.

 

 

언제든지 나 자신이 욕먹는 방식을 취해야지

남을 욕하는 방식은 영 아니에요.

 

로댕이 공방(工房)에서 일할 때, 한 장인(匠人)이 그랬대요.

"로댕, 그렇게 하면 깊이감(感)이 안 생겨.

이파리를 너 쪽으로 향하게 해봐......"

 

시라는 칼은 손잡이까지도 칼날이에요.

남을 찌르려 하면 자기가 먼저 찔려야 해요.

 

 

 

6.

 

 

동산병원 의사로 계시는 임만빈 선생님이

수필집을 내셨는데 제목이 참 예뻐요.

「선생님, 안 나아서 미안해요」

 

이렇게 책임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으면 예뻐져요.

'의미 있는 나'라는 것은 '깨지는 나'예요.

내가 깨져야 세상이 달라져요.

 

 

 

7.

 

 

시는 면(面)을 만드는 거니까,

같은 것 안에서 다른 것으로 나가야 해요.

 

걸레 쥐어짤 때,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비트는 것 아시지요.

 

걸레를 비틀어 짜면 땟물이 뚝뚝 떨어지지요.

그처럼 시를 쓰면 얻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해요.

 

말의 비틀림을 통해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속절없지 않은 삶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자득(自得)하는 부분,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

거기서 우리는 인생의 진면목을 보는 것이지요.

 

 

 

8.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시 쓸 때 들어가는 문은 가려움,

나가는 문은 따가움,

들어가는 문은 부질없음,

나가는 문은 속절없음이에요.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9.

 

 

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반성이에요.

어떻게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지 마세요.

'왜 나는 반성하지 않는가'도 반성이에요.

 

「논어」에서도  "인(仁)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원하면,

인이 바로 이를(至) 것이다" 하지요.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반성은 반성을 반성하는 거예요.

 

 

 

10.

 

 

골프 처음 배울 때,

양쪽 다리에 벽을 쌓으라 하지요.

벽이 없으면 힘을 모을 수가 없어요.

시 쓰기에서 양쪽 다리라 하면,

진정성과 언어감각일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말재주가 뛰어나도

반성하는 정신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