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어떤 울음 / 서안나

낙동강 파수꾼 2020. 11. 29. 18:59

 

   어떤 울음

 

 

 

   마른, 밥, 알을 입에 문 여자가, 204호에서, 죽은 쌀벌레처럼 웅크린

채, 발견, 되었다, 죽음의 내, 외부가 공개되었다, 쌀도, 가족도, 유서도,

없었다, 죽음의, 원, 인과 결, 과만 남았다, 수사기록에는 그녀의 몸에서,

감춰두었던 울음이, 벌레처럼 기어 나왔다고 쓰여 있다, 형사와, 의료진

과, 앰뷸런스와, 동사무소 직원이, 그녀를 죽음,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녀가 이승에서, 단순하게, 떨어져나갔다, 이승의 반대편으로 앰뷸런스

가, 떠나고, 형사와, 동사무소, 직원이, 가정식, 백반을, 들며, 소주를,

마신다, 골목의 소음들을 한 모금에 꿀, 꺽, 삼킨다, 식당 주인이, 파,

닥, 파, 닥, 부채를, 부치고, 있다,

 

 

 

♣ 詩 들여다보기 :

 

   이 시는 터져 나오는 분노와 통곡을 쉼표에 의지해 겨우 제어하고 있다. "쌀도, 가족도, 유서도 없"이 "쌀벌레처럼 웅크린 채, 발견"된 204호 여자의 고독한 죽음 전후를 이 시는 흐느낌 같은 쉼표에 기대어 띄엄띄엄 전하고 있는데, 들어보면 그 목격자 진술은 뜻밖으로 침착하고 냉정하다. "형사와, 의료진과, 앰뷸런스와, 동사무소 직원"들로 구성된 제도적 일상들이 얼마나 기계적이고 무심하게 그 죽음을 처리하는지, 그렇게 "그녀를 죽음, 안쪽으로 밀어넣"은 다음  그(우리)들이 어떻게 다시 사소한 삶으로 돌아가 '가정식, 백반을, 들며, 소주를 마'시는지, 식당 주인은 어떻게 '파, 닥, 파, 닥, 부채를, 부치'는지 이 시는 보고하고 있다. 화자는 그녀의 죽음에 연민을 표하는 대신, 세상의 도덕적 태만을 목청 높혀 질타하는 대신 '어떤 견딜 수 없음'을 다만 쉼표로 찍을 뿐이다. 쉼표를 동반한 이 침착함이 저 비정한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시인은 "그녀가 이승에서, 단순하게, 떨어져나갔다"고 적고 있다.  "단순하게"라는 말의 저 울림!

 

* 글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 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