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벼랑 - 詩 들여다보기

자연(自然)의 손 / 정일근

낙동강 파수꾼 2020. 11. 21. 16:50

 

자연(自然)의 손

 

 

 

달개비 꽃물이 좋아 씨를 받았다

들길 여기저기 수북수북 피어 있는

달개비 꽃씨 받아 묵정밭에 뿌렸다

흔하디 흔한 풀꽃이라 편안히 싹 틔우고

일가(一家) 이뤄 무성할 줄 알았는데

꽃은커녕 싹도 돋지 않는다

그렇게 서너 해 달개비 농사(農事) 망치고

사람의 손이 받는 달개비 꽃씨와

자연의 손이 거두는 달개비 꽃씨는

전혀 다른 꽃씨라는 것을 배웠다

나의 손은 익지 않은 씨를 털거나

땅에 떨어져 늙어버린 씨를 주웠고

자연의 손은 손 내밀지 않아도, 꽃

피울 씨를 받아 꽃밭 다복다복 이뤘다

은현리 모든 풀꽃 씨앗 소중히 받아 주는

따뜻하고 거룩한 그분의 손 있는데

생명이 발아하는 때를 알지 못하고

나는 욕심 많은 손을 내밀었구나

그 손으로 달개비 꽃물 들이려 했구나

또 그 손으로 시를 썼구나

 

 

 

♣ 詩 들여다보기

 

   화초를 키우다보면 화초가 시들거나 죽어 가는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화초에서 느껴지던 아름다움을 잠깐 놓친 순간 화초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다 못해 생명줄을 놓아 버린다. 특히 새로 들여온 화초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죽는 경우가 많다. 화원에서는 그렇게 탐스럽고 싱싱하던 것이 아파트에 들어와서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 이를 보며 아파트라는 곳이 화초가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임을 깨닫기도 한다.

   화초는 일 년 중 한 번 꽃을 피운다. 화초는 개화 기간 동안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가정에서 아름다운 화초를 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물을 주고 관심을 쏟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과정에서 잠시만 소홀하면 아름다운 꽃은커녕 싱그러운 잎사귀도 볼 수 없다. 자연에 속한 식물과 동물은 자연의 그 상태만으로 아름답다. 인간의 손길은 자연의 손길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모두 위작이며 모작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내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들인다.

   화초의 꽃을 피우는 일은 달개비의 꽃씨를 받아 무성하게 키우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인간이 흉내낸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한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시한적이며 일회적이다. 하지만 자연 속의 아름다움은 영속하며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기운을 품는다.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이 뿌린 달개비 씨앗이 싹을 틔우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손길에 대해서 자각한다. 인간이 아무리 정성껏 씨앗을 심는다 해도 자연의 손길만큼 넉넉하지도 보람 있지도 않음을 인식한다. 인간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사할 때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탄생이란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부분이다.

  우리가 거룩하신 그 분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때 '탄생'이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신의 따뜻한 손길을 받아들이고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수북수북'하고 '다복다복'한 그 분의 솜씨를 즐기기만 해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