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설야(雪夜) / 김광균

낙동강 파수꾼 2020. 2. 29. 13:33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을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와사등>, 남만서방, 1939 ;  <김광균 전집>, 국학자료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