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기항지 1 / 황동규
낙동강 파수꾼
2020. 5. 1. 12:31
기항지 1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 <태평가>, 창우사, 1968 ; <황동규 시선집 1>, 문학과지성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