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나비의 여행 / 정한모
낙동강 파수꾼
2020. 4. 27. 19:51
나비의 여행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의 강을 건너
빛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감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 <아가의 방>, 문원사, 1970 ; <정한모 시선집>, 포엠토피아,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