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과목(果木) / 박성룡
낙동강 파수꾼
2020. 4. 6. 19:38
과목(果木)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을 회복한다.
*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삼애사,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