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자화상 / 윤동주

낙동강 파수꾼 2020. 3. 17. 18:03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

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

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

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