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청산도(靑山道) / 박두진

낙동강 파수꾼 2020. 3. 15. 15:13

 

청산도(靑山道)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

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 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골 골짜

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띠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

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  <박두진 전집 1>, 범조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