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림자 - 초대詩 · 時調
화사(花蛇) / 서정주
낙동강 파수꾼
2020. 3. 9. 18:14
화사(花蛇)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 <화사집>, 남만서고, 1941 ; <미당 시선집>, 민음사, 1994